사랑은 누구나 자기와 다른 것에 대하여 대립하고 경계하며 자기와 다른 것이 마음에 부담을 주거나 자존심을 건드리거나 자기에게 불이익이 된다고 생각되면 이에 대해서 저항하고 저항하는 수단의 하나로 성내는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내는 것은 자기의 판단에 의하여 어떤 일로 자기가 공격을 당하거나 그로 인하여 피해가 예상될 때에 그에 대해서 반대하며 저항하는 자기 의사표현의 지극히 초보적이고 단순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으로 사랑의 계명을 주시고 사랑은 성내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즈음 학교 폭력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어 언론에서 연일 보도가 되고 있고 그 내용들도 다양합니다.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피해를 입은 학생들이 견디지 못하고 자살이라고 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입니다. 자살하는 학생들의 공통점을 보면 자기가 당한 고통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않고 누구에게 말하지도 않습니다. 일방적인 피해를 당할 때 분노해야할 것입니다. 성내고 악을 써야 할 것입니다. 자기가 당하는 사실을 학교 교실에서 큰소리로 떠들어대고 선생님에게 알려야 할 것입니다. 집에 가서 부모님에게도 알리고 형이 있으면 형에게도 말해야 할 것입니다. 왜 당하고만 있으면서 말하지도 않고 혼자 괴로워 하다가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입니까? 이는 학교에서나 가정에서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대처하는 방법에 대한 교육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공격을 당하여 자신이 괴롭고 그것이 억울하다고 생각하면 자기감정을 분명하게 말하고 중지를 요구하며 개선되지 않으면 다른 이에게 도움을 청하여 부당한 공격에 방어하는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때에 자기의사 표시의 하나로 분노하고 성질도 내야할 것입니다. 당하면서 화도 내지 않고 괴로워하는 모습만 보이고 참고 있으면 괴롭히는 사람들은 그것이 재미있어서 더욱 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이유 없이 공격하거나 괴롭히는 자들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방어를 하여 괴롭힐 수 없도록 해야 하며 방어의 방법 중에는 성내는 것도 포함돼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사랑의 계명 중에 왜 성내지 말라고 했을까요? 근본적인 이해를 바로 해야 합니다. 먼저 그 대상이 사랑할 수 있는 상대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단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한두 번 훈계한 후에 이방인 취급하고 멀리하라고 했습니다. 마귀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마귀에 속한 사람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이들과 다툼이 생기면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이겨야 합니다. 만일에 마귀에 속한 사람을 사랑한다면 이는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목적에 의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요 믿음의 형제들에 대한 사랑입니다. 세상 사람들에 대하여 이유 없이 성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다툼이 있어도 성내지 않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덕을 세우기 위해서 성내지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