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학교 폭력으로 어린 생명들이 의미 없이 죽어갑니다. 죽어 가는 생명들의 공통점을 보면 절망감, 불안과 두려움에 잡혀있다는 것입니다.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괴롭힘을 당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학교에서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그래서 혼자 울며 고통 속에 고민하다가 극한 선택을 하고 맙니다. 참으로 아쉬운 것은 아이들이 누구와 자기의 고통을 나누지 않고 혼자 생각하다가 극한 선택을 해버리는 것입니다. 사람은 나누고 살아야 합니다. 기쁨도 같이 나누고 슬픔도 같이 나누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기쁜 일이 있으면 사람들이 축하해주고 친구도 생기고 하지만, 힘들고 어려운 일 슬픈 일이 있으면 사람들이 아는 것을 싫어하고 감추려고 합니다. 그 까닭은 사람들이 알고 자기를 무시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이렇게 정리해보면 사람이 고통에 처하여 고통을 나누지 못하는 것은 그 일로 말미암아서 자존심 상할 일을 생각하면서 그것이 두려워 감추다가 고통을 더 크게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군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군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병사들이 탈영이나 자살을 합니다. 이렇게 정리해보면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그 집단에 잘 적응하지 못하면 극한 선택을 하는데 적응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당하는 현실을 잘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에 좋지 못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런 점들은 교회가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절대적으로 금하는 것은 당 짓는 것입니다. 우리끼리 모이자 이런 일을 하자 이것은 교회가 절대 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믿음만을 보십니다. 가난한 자도 부요한 자도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귀한 사람도 천한 사람도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오직 믿음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십니다.
하나님은 직분을 주실 때 외모를 보시지도 않으시고 사회적 지위를 보시지도 않으십니다. 오직 하나님은 믿음 하나를 보시고 얼마나 충성스럽게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만 보십니다. 예수님이 세우신 예수님의 몸 된 교회에서 예수님을 주인 삼고 예수 안에서 얼마나 예수님을 본받아서 예수님의 겸손과 온유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이 명령하신 사랑을 실천하여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며 예수 안에서 하나 된 형제를 섬기며 하나 될 이웃을 섬기며 하늘에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충성할 것인가만 보십니다. 죽도록 충성하여 직분을 감당할 때 충성된 종이라 칭찬하시고 생명의 면류가을 주실 것입니다.